파울로코엘료읽기
[매경데스크 칼럼] 코엘료의 서재
bitkhan
2008. 10. 31. 08:17
[데스크 칼럼] 코엘료의 서재 | |||||||||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고전적인 지식인 스타일이다. 세계의 지성인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항상 1등 아니면 2등에 오르는 이 거물은 무려 5만권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한 곳에 보관하기 힘들기 때문에 3000권은 서재에, 나머지는 시골집에 보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책이 너무 많다 보니 필요한 자료를 찾느라 며칠을 보내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기억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1억부 이상 책을 판매한 브라질의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어떨까. 그는 단 400권만 보관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출간된 그의 수필집 '흐르는 강물처럼'에 의하면 그는 400권 이상의 책은 남들도 볼 수 있도록 공공기관 등에 기증하고 있다. 소장 중인 400권은 그에게 있어서는 그 시점에서의 베스트 400인 셈이다. 코엘료는 사실 인터넷에 능숙한 작가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품활동을 한다. 책을 보관하고 있더라도 사용하기 힘든 집필 패턴이다. 연중 4개월 정도는 파리 근교 작은 마을, 4개월은 브라질에서, 나머지 4개월은 떠돌아다닌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코엘료의 모습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바야흐로 인터넷은 세계적인 거장의 집필 습관마저 변화시켰다. 그의 말대로 '단어 2개 정도만 넣으면 그가 필요로 하는 시 소설의 문구를 고스란히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인터넷의 위력은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전체 전시 중 30% 이상이 전자 책에 관한 것이었다. 코엘료는 당연히 전자 책을 공격하지 않았다. 인터넷의 효용을 잘 알고 있는 데다 스스로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인터넷을 통해 배포할 경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전자 단말기를 사용하건 인쇄물을 사용하건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상상이 모든 것'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읽는 문화' 자체라는 뜻이다. '읽는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읽는 문화'의 중요성은 최근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에 참가한 글로벌 석학들의 입에서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필요한 인재에 있어 '통섭(interdisciplinary)'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언 첩 호주국립대 총장 같은 이는 "인위적으로 나눠놓은 학제를 넘나들며 이를 통합할 수 있는 인재야 말로 불확실한 시대에 있어 가장 필요로 하는 인재"라고 규정했다. 그런 통섭의 능력은 자기가 미처 배우지 않은 분야에 대한 '읽기'를 거치지 않고서는 습득이 불가능하다. 읽기야 말로 사물을 심사숙고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마침내 자기만의 생각으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읽기문화의 대척점에 서 있는 영상문화는 그런 구실을 하는 데 있어 취약하다. 일방향성 때문이다. 사고하고 분석할 여지를 주지 못한다. 잘 사는 나라들에는 모두 읽기문화가 흥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 일본 등 선진국 대부분이 독서 강국이다. 과거의 제국 모두 읽기문화에 있어서 당대 최고 수준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식기반사회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책과 신문 등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액션으로 옮겨지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 지식기반사회의 유일한 생산도구인 '지식의 샘물'이 채워지지 않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상황은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인쇄물 구입비는 날로 줄어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의하면 문화생활비 가운데 도서ㆍ잡지 구입비 비율은 2004년 16.2%에서 지난해 14.9%로 낮아졌다. 얼마 전 서울시 통계를 보면 서울시민 3명 가운데 1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것으로 나왔다. 1인당 평균 독서량은 한 달에 한 권에도 못미치는 연 11.9권에 불과하다. 국민 1인당 연간 독서량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문제가 심각하다. [윤구현 문화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