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The Road를 읽으며
(책을 읽어나가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간략하게 적어볼 생각입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의 머리속에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 이 책 <The Road>를 펴고 첫장을 읽어나가면서, 한 문장이 뇌리에 새겨졌다. Barren, silent, and godless.
지구대재앙 후의 세계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계속 책을 읽어 나가다 보니, 등장인물의 모습이 그려졌다.
A father and a son. 아버지와 아들. 이 둘은 어떤 스토리를 펼쳐갈까? 간만에 소리내어 몇페이지를 읽어나갔다.
영어공부에 있어 'read aloud'가 꽤 유용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사실 가장 실천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벌써 3시로 향해가고 있다. 조용히 소리내어 읽어본다. 갑자기 아이가 말을 건다. You can read me a story. 아니다. 나에게 건 말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책을 읽어달라는 소리다. 적막한 아침속에 아버지의 책읽는 소리가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역시 아침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부리나케 세면을 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창밖엔 눈바람이 휘날리고 있었다.
빙하시대의 눈바람이 저럴까! 지하철 역까지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겁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행히 앉아갈수 있어 다시 책을 폈다.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들판을 지나, 도시로 들어와도 적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No sign of life(p.21). 늘 북적되는 도시의 일상속에 사는 나로서는 잘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부분이다.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소리에 눈을떴다.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역시 책은 낮에 틈내서 읽어야돼'.
점심후에 잠시 여유를 가졌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눈에 걸리던 단어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tarp. 한 10번 이상은 지나친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왠만해서는 단어를 찾지않는다. 책의 내용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정말 자주 나왔다. 구글에서
서치를 해봤다. http://www.backpacking.net/makegear/cat-tarp/index.html
아하! 이게 바로 tarp구나. 확실히 감이 잡혔다. 처음엔 옷종류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들의 이동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동천막'정도로 유추해낼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는 시간으로 출퇴근시간만큼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시간은 없는듯하다. 아들은 계속 두려워한다. 둘이 기억하는 하나의
기억이 있는듯하다. 하나는 아내로서, 하나는 엄마로서 하지만 그 기억이 서로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새해 첫출근길 지하철까지 가는 길은 눈으로 뒤덮여있었고, 지하철 역사안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다행히 역이 시작하는 지점이라 앉아갈 수 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는데, 오늘은 그런 행운도 함께하지 못했다. 평소 40분이면 될 길을 오늘을 매 정거장마다 승하차하려는
사람들때문에 무려 20분이나 연착했다. 당연 책은 펼쳤지만,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T.T
아버지에게 아들은 무엇일까? My job is to take care of you. I was appointed to do that by God(p.77). 아버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생존하려고 노력한다. 아들을 지키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없었다면, 이 비열한 세상에서 아버지는 벌써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을까!.
Nothing bad is going to happen to us. Because we are carrying the fire. Yes. Because we are carrying the fire(p.83)
여기서 말하는 '불'은 무엇일까? 실체일까 아니면 비유적인 표현일까. 거친 세상을 헤치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꿈이 필요하다.
절망적인 현실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희망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이란 혹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절망적이고, 거친 세상. 그러한 세상을 헤치고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단 3단어로 정리된다. Starved, exhausted and sick with fear(p.117) 자신보다는 아들을 먼저 챙겨야 하기에, 점점 굶주려서, 피폐해지고, 병들어가는 눈물겨운 부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What woke the boy was him grinding coffee in a small hand grinder(p.144). 세상이 없어져도 사람은 자신의 취향을 버릴 수 없다. 아니 습관이란 몸에 박히는 커피같은 것일지 모른다. 할수만 있다면 계속하고 싶은 것. 요즘 회사에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먹고 있다. 아침에 회사와서 1잔, 점심먹고 1잔, 커피가 이제 나의 생활의 한 의식(ritual)이 되고 있다.
퇴근길엔 다행히 앉아서 귀가할 수 있었다. 150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는데, 별다른 사건도, 새롭게 등장인물도 거의 없다. 이거
영화로 찍었다는데, 도대체 무얼 보여줄 수 있을까?
What are our long term goals?(p.160) 소년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그 말은 어디서 들었니? 아버지가 말씀하셨지요. 답이 뭐였지? 잘 모르겠어요.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이들에겐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것일뿐.
그래서 다음 말이 여운이 깊게 남는다.
Are you real brave?
Just medium.
What's the bravest thing you ever did?
Getting up in the morning, he said.(p.272)
아침에 일어나는 것-그것이 가장 용감한 행동이었다는 대답에 생각이 깊어졌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아버지와 아들은 어디로 가는걸까? 였다.이들이 과연 최종 목적지를 두고 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생존하기 위해 하루하루 움직이는 것인지.... 또 한가지 cart를 가지고 다니는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데,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별로 안어울리는 기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cart라는 단어를 볼때마다, 이마트 카트가 먼저 떠오르는 건 삶의 습관때문일까.
오늘 퇴근길에 드뎌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머리속에 남는 건 아버지와 아들, 불, 총, 커피등이다.
칸
2010.1.6(수) 새벽 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