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오직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오직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라 !"
최진석 서강대 철학교수가 쓴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책을 읽었다. 광진 도서관의 한책읽기에서 추천한 책이다. 저자는 인문학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 혹은 '인간의 결', 쉽게 풀어 '인간의 동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문학을 배우는 이유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인문적 통찰을 하는 관건은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이며,'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뚫고 이 세계에 자기 스스로 우뚝 서는 일, 이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문적 통찰은 대답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데서 비로소 열린다.'
책내용 전체를 다 말하면, 진짜 스포일러가 될 것이라, 눈에 들어오는 것 중 일부만 정리하였다. 상상력이 없는 이유는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가 소개하는 자기를 대면하는 3가지 방법은 글쓰기, 운동, 그리고 낭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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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자기를 대면할 수 있는 장치'는 낭송입니다. 옛날에는 좋은 사회를 묘사할 때 "글 읽는 소리가 마을마다에 울려 퍼졌다"는 표현을 하곤 했습니다. 소리내어 읽는 거지요. 바로 낭송입니다. 낭송을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죠. 바로 소리를 내서 읽은 다음, 그것이 다시 내귀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낭송을 하면 읽은 내용이 육체적인 감각을 건드려 내면화하게 됩니다. 육체적 내면화라고 할까요? 아는 내용이 육체화하는 것을 체득이라고 합니다. 터득을 해야 지식이 실천되겠지요. 체득되지 않은 지식은 머릿속에 잠시 머물다 사라져 버려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지요.
책을 읽을 때 한번 소리내서 읽어 보세요. 소리 안 내고 눈으로만 읽으면 읽을땐 다 아는 것 같지만, 한번 써 봐라, 그러면 못쓰죠. 그런데 낭송을 한 다음에, 써 봐라, 그러면 다 쓸 수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자기가 읽은 내용이 소리를 통해 나갔다가 자기한테 다시 돌아와서 육체화되었기 때문이에요. 즉 자기가 작동하기 때문이에요....
독립적 주체가 되는 일은 육체성을 확인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육체를 통해서만 인간은 타인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구별되니까요. 글쓰기, 낭송, 운동을 주체의 자각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방식으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입니다. 글쓰기, 낭송, 그리고 운동은 모두 육체성을 발휘하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를 하고 자주 시간을 내어 낭송을 하며 항상 운동으로 자신을 단련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듣기만 해도 얼마나 윤기 나는 사람입니까? (268-269쪽, 인간이 그리는 무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