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정기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의 퇴임사의 글이다. 오늘 맨큐의 경제학 원서를
인터넷으로 주문한 후에, 블로그 글중에 맨큐의 경제학과 관련된 좋은 글이 없을까 하던
중에 찾게 된 글이다.
처음엔 맨큐의 경제학이 아닌, 본인 삶의 발자취를 수필형식으로 쓴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전체글이 일목요연하게 생명의 경제학/이기적 경제학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 맨큐의 경제학, 유클리드 기하학, 이기적 유전자, 종의기원등에 대한 이야기가
실타래 풀리듯이 연결되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읽은 책 하나하나가 하나의 점이 되고 그 점을 아래 글처럼 하나의 끈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전문을 소개하게 되었다.
칸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과 함께해온 나의 발자취와 생각
정기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0. 들어가며
내가 1960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한 때로부터 기산하면 이제 만46년만에 서울대학교에서 정년을 맞습니다. 거의 반세기를 한군데서 지낼 수 있었다니,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수십년동안 경제연구소에서는 정년퇴임에 즈음하여 퇴임자에게 경제논집 한 호를 기념호로 제작하여 증정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일도 허례라는 인식이 일각에서 일어나면서, 그 수증을 사양하는 사례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기념호 제작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을 때, 나도 사양하여, 이 일에 관련되는 여러분들의 노고를 덜어 드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 고민을 좀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경제연구소 및 경제논집과 관계되는 저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사양을 접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기념호의 머리를 장식하게 될 이 글에서는, 주마등같이 지나간 지난 반세기 동안에 경제학과 함께 해온 한 사람의 발자취와 생각을 더듬으면서, 선배님 후배님들께서 베풀어주신 그동안의 후의에 감사하는 뜻을 담아보려 합니다.
1. 발자취
1.1. 경제연구소와 경제논집과 나
내가 경제연구소 및 경제논집과 관계를 맺은 것은 1964년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입니다. 당시 경제연구소 소장은
우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경제논집의 편집과 교정이었습니다. 이번 호의 경제논집이 제44권인 사실로부터 역산하면 알 수 있다시피, 경제논집 제1권은 1962년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상과대학에 다른 연구소가 없었고, 상과대학을 대표는 연구소와 학술지였기 때문에 제1권의 제호는 경제학과 상학을 아우르는 “경상논집”이었습니다. 제2권부터 비로소 제호는 “경제논집”으로 되었습니다. 그 당시 경제연구소는 상과대학의 유일 연구소였을 뿐 아니라 공공경제연구소로서 전국적으로 유일하였습니다. 그래서 연구소의 정식 명칭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부속 한국경제연구소”였습니다.
경제논집 제1권과 제2권은 모두 한 호짜리입니다.
1.2. 계량경제학
1968년에 전임강사가 되었을 때 나는 변형윤교수로부터 담당과목들 즉 경제수학, 통계학, 계량경제학을 차례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때까지 계량경제학은 그 표본이론적 기초가 충분히 강조되지 못하던 상황이었는데, 나는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한국은행에 어떻게 알려졌는지, 1972년 초에 이에 대한 특강을 해달라는 부탁이 왔습니다. 원래는 두 세 번 정도로 예정하고 부탁을 수락하였는데, 하다보니 반년 가까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은행의 위상은 대단하였고, 강의를 듣는 분들은 상과대학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조사역이었던 현 박승총재가 빠지지 않고 청강하던 기억이 나고, 신권으로 받는 강사료가 전임강사 월급보다 많지 않았던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당시 위세 좋은 한국은행에도 복사기가 없어서, 영문교재를 일일이 스텐실에 타자하여 등사판 교재를 만들어 썼던 일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1973년에는 3년간의 “출장”발령을 받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Ph.D.과정을 밟게 되었는데, 그 당시 계량경제학의 주교재였던 H. Theil의 Principles of Econometrics(1971)은 나에게 너무나 좋은 교재였고, 젊은 담당교수 D. Ebbeler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계량경제학에서의 각종 검정에 심취하여, 학위논문 "An Investigation of the Power of Some Classical Tests in Econometrics"를 쓰게 되었습니다. (학위논문의 한 절은 뒤에 Econometrica에 논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지도교수와 학과장 D. Smyth 교수도 나의 성취에 만족하면서, 과정이 끝날 때 즈음에는 나의 서울대학교 전임강사의 자격으로 동료학생의 Ph.D. 논문의 정식 심사위원의 한 사람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1.4. 수학과 경제학
말할 필요도 없이 경제학에서 수학은 언어입니다. 그런데 Claremont에서 못 잊을 또 한 분의 노교수는 D. Vandermeulen 교수입니다. 이 분은 타자기를 쓰지 않고, (워드프로세서는 물론 없을 때입니다.) 수리경제학의 내용을 유려하고 아름다운 필기체로 쓴 교재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수학적 결과의 경제학적 의미를 유난히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최적화의 이계충분조건의 경제적 의미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아쉽게 생각하였습니다.
귀국 후에 미시경제학과 수리경제학을 가르치면서, 이러한 교수 태도에 영향을 받아, 수학적 추론결과를 경제학적으로 해석해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Hawkins-Simon 조건의 올바른 경제학적 해석, 이계충분조건의 경제학적 의미규정 등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수학의 논리 속에 내재하는 경제학적 논리를 발견하고 이를 출판하여, Samuelson, Solow 등 대가의 인정을 받는 일은 작은 유쾌한 일이었습니다.
2. 생각
2.1. 이기적 유전자론과 협력이론
R. Dawkins의 The Selfish Gene(이기적 유전자, 1976, 1989)는 현재 세계적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어있는 책입니다. 나는 이 책을 1993년, 그 번역자인 생물학부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한 장은 정치학자인 R. Axelrod의 Evolution of Cooperation(협력의 진화, 1984)라는 책의 요약판입니다. 이 책은 1996년에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없었습니다. 그해 홍콩중문대학으로 객원교수로 가서 가장 먼저 읽은 책이 이 책입니다. 이 책은 미래가 충분히 중요성을 가지는 비영합게임의 상황에서, 공권력의 개입 없이도, 이기주의자들 사이에서, 선의의 상호주의가 어떻게 판세를 장악하여, 상호협력의 관계가 대세를 이룰 수 있는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이 명제는 경제학자에게는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 논증방법이 뛰어납니다.
2.2. 다윈과 유클리드와 맬서스
나는 도킨스를 읽고 내친 김에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었습니다. 나로서는 이름만 듣던 책입니다만, 읽어보니 실로 엄청난 책이었습니다. 그의 자서전도 읽어 보았습니다. 다윈은 젊어서는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일주하며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였고, 그 기행문을 썼습니다. 후에도 예리한 관찰력으로 많은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거의 이십년 동안 책을 쓰지 못하고 자료만 부둥켜안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유클리드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자서전에서 그는 유클리드를 두 번 읽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만, 그는 구슬 즉 자료가 아무리 많아도 꿸 실이 있어야 보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유클리드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맬서스의 인구론을 우연히 읽다가, 다윈은 애타게 찾던 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그때의 감격을 차분하게 그러나 힘있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실을 얻고 나서, 4년이 지나서야 35페이지짜리 메모를 써놓고, 또 2년이 지나서야 연필로 350페이지 정도의 요지문을 만들었는데, 자서전을 쓰는 그 말년에도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실은 “생존투쟁의 진실”입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생물학 책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모두 수긍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경제학 책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경제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책의 제3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단지 말로 수긍하기에는, 보편적 생존투쟁의 진실을 수긍하기보다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항시 마음으로 수긍하기에는, 그 보편적 생존투쟁의 진실보다 수긍하기 어려운 일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 진실을 철저하게 마음 속 깊이 새겨두지 않은 채로 자연의 경제과정에서 생기는 분배, 풍요, 기근, 절멸, 변이 등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 자연의 경제과정을 희미하게 이해할 뿐이거나, 완전히 잘못 이해하게 된다.” 나는 이 말이 얼마나 엄청난 진술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연의 경제과정을 다루는 것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이라면 그것이 경제학 책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는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 the economy of nature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3. 유클리드, 서광계, 마테오 리치의 기하원본
그러면 다윈으로 하여금 “종의 기원”의 집필을 이십년이나 늦추게 한 유클리드는 누구입니까? 그는 생몰연대도 불분명한 이천여년전의 그리스인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그가 남긴 “기하원본” 즉 Elementa가 인류에게 과학을 가능하게 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책은 문명의 중심이 그리스에서 아랍으로 넘어갈 때 같이 넘어가서, 아랍문명 속에서 계승되어 오다가 15세기에 들어서서야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구의 르네상스와 함께 부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16세기 마테오 리치에 의해서 중국에 소개되었습니다.
명말의 학자 서광계는 리치에게서 서학을 배우면서, 유클리드를 알게되자, 엘레멘타가 중국을 위하여 필요한 책이라는 것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리치를 졸라, 리치가 구술하고 서광계가 받아쓰는 방식으로 번역을 하여 1607년에 “기하원본”을 냈습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기하학의 기본개념들이 점 선 면 각 등, 단음절어로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중국변역서 때문임이 틀림 없습니다. (일본의 번역에 따르게 된 경제학 용어가 거의 다 이음절어라는 사실과 대조가 됩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그 책이 17세기 초에 중국에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중국에는 연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입니다. 그 책이 나온 약 170년 후에 즉 청나라 건륭제 때에 중국 역사상 최대의 문화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고전서”의 편찬이 있었습니다. 그 전서 속에 “기하원본”이 들어있는 사실을 나는 홍콩에 있을 때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또 230년이 지난 최근에 중국에서는 그 “기하원본”의 보급판 영인본이 발행되어, 그것이 서울대학교 도서관에까지 와 있는 것을 나는 또한 확인하였습니다. 현재 서광계의 고향인 상해에는 시의 서남쪽에 “광계공원”이 있습니다!
2.4. 유클리드와 과학과 경제학
르네상스를 문예부흥이라고 하지만 그 가장 중요한 현상은 유클리드의 부활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5세기에 라틴어 번역판이 보급되면서 “과학”이란 것이 생겨나게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유클리드는 지식인의 교양서가 되었고,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의 공통 전범이 되었습니다. 갈릴레오의 대화에서 논증의 근거는 유클리드입니다. 뉴톤의 프린시피아는 그 서술형식까지도 유클리드를 닮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의 서문에 자기에게 유클리드를 가르쳐준 김나지움의 선생에게 감사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의 기원”은 겉으로는 서술형식으로 되어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책 전체가 유클리드의 방식에 따른 “하나의 긴 논증 (one long argument)”입니다.
경제학의 경우를 봅시다. 현대경제학의 양대 지주인 A. Marshall과 L. Walras의 경우를 보면 그 주저의 제목에 각각 Principles와 Elements가 들어있습니다. 둘 다 경제학의 프린시피아와 엘레멘타를 지향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경제학 연구가 과학 일반의 연구의 영향권 안에 있다는 재미있는 증거는 J. M. Keynes의 General Theory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케인즈는 고전파경제학의 비판의 방법으로, 책의 앞머리서부터 그 이론의 공준을 찾아내서 공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공준(postulate)는 바로 공리(axiom)입니다. 어느 체계의 공준을 부정하면 그 체계는 그대로 붕괴하고 만다는 것을 인식하는 케인즈는, 유클리드를 꿰뚫고 있는 케인즈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책의 제목은 어떠합니까? 1920년대와 30년대를 풍미하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special theory와 general theory의 구별은 그 이론의 적용대상이 “가속도가 존재하지 않는 특수공간이냐 존재하는 일반공간이냐” 입니다. 케인즈에게 고전파 이론과 자신의 이론의 차이는 그 적용대상이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고용의 경제냐 존재하는 불완전고용의 경제냐” 입니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유추해 볼 때, 케인즈에게는 자연스럽게, 고전파 이론은 special theory이고, 자신의 이론은 general theory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학문 분야를 가리지 않고 유클리드가 중시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과학의 본질인 지식의 누적적 축적의 원리가 그 속에 담겨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은 이를 알고 있습니다.
2.5.
사람들은, 자기는
그러나 이기주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것을 간파한 대표적인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아담 스미스입니다. 다윈도 그러합니다. 스미스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정부의 간섭 없이도,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 메카니즘에 이끌려 사회의 공동선을 이룩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고, 현대경제학자들은 이 명제가 타당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추구합니다. 다윈은 생명의 본질이 생존투쟁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투쟁이 자연선택을 통하여 즉 자연의 경제과정을 통하여 이룩된 고등동물을 비롯한 결과물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있습니다. 도킨스는 현존 유전자는 모두 이기적이라는 이기적 유전자론을 펴고 있지만 그 속에서 긍정적 측면을 찾아내려합니다. 악셀로드는 이기적인 주체들간의 상호작용이 어떤 조건하에서 협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를 고찰합니다.
2.6.
경제학은
그러나 이제 이기적 유전자론의 성과를 경제학에 도입한다면 이 문제가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극진한 사랑, 형제간의 우애 등의 명백한 “이타적” 행동이 모두 이기적 유전자론에서 유전자의 “
A. Marshall은 그의 주저 Principles of Economics(경제학원리, 최종판, 1920) 서문에서 “경제학자의 멕카는 경제생물학이지 경제역학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윈에 관한 언급이 수없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경제생물학을 추구할 만큼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균형”과 같은 역학의 개념을 써서 “경제역학”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마셜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활동한다면, 당연히 생명경제학을 추구할 것 같습니다.
2.7. 아름다운 이기심: 생명경제학의 함의
생명경제학은 생명의 본질로서의
생물학의 최근 성과에 의하면, 생명의 이기적 본질은 고금 동서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진실입니다. 즉
생명경제학은 평등주의의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예컨대 평등주의적 교육개혁은 개인의 이기심 즉 자기향상의욕을 부인해야 성공합니다. 생명경제학에서는 이기심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모택동의 중국경제의 실패는 “필요에 따른 분배 (按需分配)”에 있었고, 등소평의 성공은 “근로에 따른 분배 (按勞分配)”에 있었습니다. 경제는 노동자의 양식이나 기업가의 애국심에 호소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인민의 고도의 공산주의적 사상각오 즉 이기심의 소멸 위에 실현됩니다. 공산주위의 실패는 이기심 소멸 노력의 실패입니다. 생명경제학은 이런 이기심 없음을 전제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높은 문명은 이타심의 산물이 아니라 이기심의 산물입니다. 이기심을 억제하는 제도 하에서는 고도의 문명이 실현될 수 없습니다. 발명의 과실을 모두 사회에 환원해야하는 제도 하에서는 에디슨이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문명은 상호주의적 바탕위에서 협력하는, “아름다운 이기심”의 산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3. 보람과 기쁨
이상에서 극히 사적인 발자취와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짧지 않은 세월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속에서 살아오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좋은 선배 좋은 동료 그리고 좋은 후배들과의 좋은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나는 평소에 자랑하곤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비록 세속적으로 화려한 자리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를 가르치고 그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자리이며, 더욱이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라고 말입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를 가나 후배 제자들을 반갑게 만나게 되는 자리라고 말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맹자의 말대로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도 이것만은 못한 것입니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 ..., 而王天下不與存焉. 孟子 盡心 上)
그 한 증거가 이 기념호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일부러 이 기념호의 준비상황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속으로는 어떤 분들이 어떤 글을 써주시는 걸까라고 궁금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목차를 받아보니 스물다섯 분이 열일곱 편의 글을 써 주셨습니다. 표학길,
2005년 12월
관악산 생명경제연구실에서
정기준
http://www.kyobobook.co.kr/booklog/myBooklog.laf?memid=okhljy&board_cd=9261&content_cd=31766#sto